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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느 대회 참관기-셋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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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목요일) 저녁 7시 반이 경기 시작이다. 6시 15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참치 샌드위치를 3.25 유로에 사서 먹으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샌드위치 빵이 축축해져 있어서 입에 닿는 감촉이 별로였다.

7시경 코트에 도착하니 상대방도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는 프란츠 퀴일이라는 38세의 호남이다. 키는 188센티는 되겠고 균형되게 늘씬하다. 눈동자는 푸른색, 머리는 짙은 갈색이다. 그런데 그에게서 마늘 냄새가 심하게 났다. 프랑스에서는 한국 못지 않게 마늘을 즐겨 먹는다. 그는 인근의 다른 도시에서 왔다.

워밍업을 하면서 그의 솜씨를 관찰하였다. 왼손잡이였다. 그는 스트록을 가만가만 조심스럽게 친다. 컨트롤 위주의 플레이를 하는 모양이다. 백핸드는 다운더라인으로 칠 때에는 한 손으로 치다가도 크로스로 칠 때는 양손으로 쳤다. 발리와 스매쉬, 서브도 안정되었다.

-첫 셋
내가 서브를 시작했다. 내 첫 서브를 그가 리턴 미스를 했다. 기분 좋은 포인트다. 이어지는 포인트에서는 그가 내 백핸드 쪽으로 낮게 또박또박 보내왔다. 내 백핸드로 계속 주다니 내 백핸드를 물로 보나 ? 어쨌든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가 내 공이 짧아지면 넷으로 들어 온다. 로브를 했지만 다 걸려서 스매쉬를 당했다. 분하다. 브레이크 당했다.

그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했다. 그의 스트록 실수, 스매쉬 실수, 로브 아웃 등으로 포인트를 땄다. 1 대 1 이다. 나보다 세 등급 높은 그를 상대로 그런대로 비등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 느낌이 좋다. 그래, 너를 내 등급 상승의 제물로 삼으리라 하고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세 번째 게임 내 서브다. 햇빛을 향하는 쪽이라서 캡을 썼다. 그의 백핸드 쪽으로 주로 서브를 넣었다. 그는 백핸드 플랫으로 파워는 없으되 낮게 내 백핸드 쪽으로 민다. 내가 강하지 않은 양손 백핸드로 다운더라인으로 넘긴다. 그의 백핸드 쪽으로 말이다. 그 때부터는 랠리 싸움인데, 그는 자기 진영 오른 쪽 모서리에 포진해서는 그의 백핸드로 가는 공도 웬만하면 포핸드로 받아친다. 그러면서 내 백핸드 쪽으로 집중해서 준다. 그의 포핸드와 나의 백핸드 싸움이니 내가 불리하다.

그의 포핸드는 스핀이 다소 있어서 내 백핸드쪽으로 바운스가 크게 튀어 오른다. 힘들게 넘긴 볼이 짧아지면 그는 들어와서 빈 곳으로 위닝샷을 친다. 내가 겨우 받아 올려도 발리나 스매쉬로 끝을 낸다. 그의 스매쉬를 몇 번 받아 올리다 보니 숨이 차고 땀이 얼굴과 팔뚝에 줄줄 흐른다. 가능하면 포인트 사이에 쉴 틈을 많이 가지려고 공을 주우러 갈 때 천천히 갔다.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브레이크 당했다. 1 대 2 이다.

그렇지만 아직 크게 낙심하지는 않았다. 그의 스트록도 받아 넘길만하고 매 게임마다 나도 유효한 득점을 한 두 개씩 하고는 있다. 넷 대쉬에 이은 크로스 발리도 하였고, 숏에 이어 그의 키를 넘기는 로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베이스라인까지 좇아가서 가랭이 사이로 묘기의 스로록을 해 왔을 때, 나는 넷에서 기다리다가 숏발리로 득점한 것은 기분이 최고였다. 그도 나를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그러나 넷에서 발리를 했을 때 그에게 패싱을 당한 것이 훨씬 많았다. 내 발리가 코스를 읽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점수는 항상 그에 비해 두 점씩 모자랐다. 트리플 게임 포인트를 잡고도 결국은 게임을 잃기도 하였다. 게임을 확실히 장악할 무기가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의 실수가 아니면 내가 자력으로 따 내는 포인트가 별로 없었다. 이후로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2 대 6 으로 첫 셋을 잃었다.

-두 번째 셋
매 게임이 같은 패턴으로 진행 되는데도 해결책이 떠 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변화는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또 차이 나게 질 뿐이다. 이판사판으로 나가기로 했다. 베이스라인에 붙어서 빠르게 스트록전을 벌이자. 서브리턴도 베이스라인 안에서 하자. 어제 옆 코트에서 늙은 신사분이 그렇게 플레이 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 신사는 스트록이 파워는 없었지만 베이스라인 안에서 받아 치는 볼이라서 타이밍이 빨라서 효과가 좋았었다.

그런데 새 전술의 결과는 참담했다. 내 스토록이 연신 아웃이 나고 제대로 맞은 공도 상대방을 압도할 만큼의 위력은 없었다. 그러한 플레이를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어찌 현장에서 새 전술을 소화해 낼 수 있었으랴 ! 0 대 6 으로 두 번째 셋을 헌납하고 말았다.

넷으로 나가 악수를 하고 그에게 축하 인사를 하였다. 그도 흥미있는 게임이었다고 응답했다. 같이 브러쉬를 밀어서 운동장을 정리하고 클럽하우스로 가서 그가 사는 맥주를 한 컵씩 마셨다.

-에필로그
내 포핸드가 충분히 공격성이 없는 것은 당장은 어찌할 바가 없다. 나름대로는 평소보다 좀 더 공격적으로 포핸드를 쳤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포핸드를 공격적으로 친 것이 잘못 택한 전술인지도 모르겠다. 공격적으로 치려다 보니 힘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 정확성이 떨어졌고, 더 심각하게는 스트록 이후 내 발란스가 깨어졌다. 그래서 랠리가 계속되면 3,4구에서 내 공이 약하고 짧아져서 결정구 공격을 당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시종일관 또박또박 치는 스트록을 하다가 패싱샷 때만 좀 더 빠른 타이밍의 공을 쳐 왔던 것 같다. 또박또박 치니 코스나 길이를 더 잘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강하게 쳐 준 것이 그를 편하게 만들어 준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수들과 경기할 때, 상대가 어설프게 공격해 오면 오히려 내가 요리하기 편해서 쉽게 이겼었다. 그 반대로 하수가 또박또박 걷어 올리기만 하면 내가 조바심이 났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조사해 보니 그는 15세부터 지금까지 23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한 때는 15 등급이었다고 한다. 등급으로만 보면 나와 상대가 되지 않을 고수이다. 내 분한 마음을 조금 덜어 주었다. 그의 말이 내 공이 끊기지 않고 계속 올라와서 놀랐다고 했다. 내가 토너먼트에 꾸준히 참가하면 15/1 정도 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해 주었다. 두 번째 셋에서 왜 앞으로 다가둘어서  치는 전술로 바꾸었는지도 물어왔다. 내 생각대로 답을 해 주었다. 그에게 앞으로도 계속 이기고 올라가라고 말해주고 작별을 했다.

돌아오는 찻길이 어제만큼 신나지는 않았다. 아, 내 포핸드, 백핸드, 언제나 빨라지려나 하고 속으로 궁리에 궁리를 반복하며 리옹으로 돌아 왔다. 오는 길에 내 클럽 ASCUL에 들르니 브루노와 스베탕카가 랠리를 하고 있었다. 내 전적을 보고하고 돌아 나왔다.

내 아파트로 돌아 오니 TV와 식탁과 침대가 나를 반겨 주었다. 시간은 밤 10시 반이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全 炫 仲 07.28 05:36
    3편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상세하게 써주셔서 실감이 납니다..
    전 두번째 경기도 역전승할거라고 예상하면서 읽었는데 2:0으로 패해 아쉽습니다.

    첫편에 사진 링크했어요..^-^
  • 홍남선 07.28 07:43
    사진 링크 감사합니다. 꾸벅.
  • 스카이블루 07.28 10:49
    참 부럽단 생각이 듭니다.
    좋은 경험담 재미있고 읽었습니다.
    더 발전하시고 이루고자 하시는 레벨까지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 이중희 08.20 16:50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쏨씨가 대단하시군요.
  • kimjongwoo 09.21 11:21
    간결하고,그러면서도 그림이그려질만큼 소상하게,,,문장력이 대단합니다,,,그리고 무지무지 부럽습니다....국내대회도 마음대로 참가할 수 없는 저에겐...
  • 조동일 03.31 00:19
    좋은 글입니다.. 경기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
  • 김장훈 06.02 20:37
    전.테.교 신입생입니다. 올리신지 거의 1년이 지난 글인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동안 많이 발전하셨겠죠.
  • 초보탈출 12.09 11:46
    좋은 글솜씨와 열정 덕에 세경기 모두 자알 관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만만디 11.14 23:55

    멋진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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