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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 마사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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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 야영장으로 가기 전  평균 신장 180cm 이상으로 군살하나 없는 몸짱 부족 마사이족 마을로 갔다.


일인당 20불이라는 입장료를 내고 그들의 생활을 구경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으나 역한 냄새가 먼저 코를 막게 했다.


마을은 큰 마당을 중심으로 둥근 형태로 집들이 옹기종이 들어서 있는데 잡목과 가시덤불로 울타리를 했다. 

책에서 읽은 그대로 지붕은 소똥을 발라 놓고 있었다. 바짝 마른 소똥은 습기를 막아주고 보온을 해 준다고 했다.

맨손으로 사자도 때려잡아 용맹하기로 소문난 마사이족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환영의식을 치르며 하늘높이 치솟는 춤을 추기 시작했고 여자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20여만 원의 고가로 히트치고 있는  마사이 신발이 생각나 그들의 발을 쳐다보니 하나같이 타이어를 잘라서 만든 슬리퍼 모양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건강하려면 '마시이족처럼 걸으라'는 책에 의하면 마사이족들은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는 중심부 보행을 해 발바닥 전체로 땅을 짚어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또한, 마사이족처럼 평소보다 보폭을 크게 해서 시속 5~8㎞의 속도로 빠르게 걸으면  체지방을 연소시키고 운동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성왕당 같은 신성시하는 나무둘레를 쳐 놓은  울타리에는 마사이족 부인들이 직접 만든 구슬 목걸이부터 귀걸 이등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되어있어 한 개라도 더 팔려는 의욕이 왕성해 졸졸  따라 다녔다.


구슬목걸이를 팔려고 흥정하는 모습은 맨손으로 사자도 때려잡았다고 하는 그 용맹성과는 상당히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움막의 내부를 설명해 주려는 가이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방 두 칸에 가운데 불씨가 살아 있는 작은 화로가 있고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는 실내에는 천정이 낮아 키가 큰 마사이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증이 일게 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구슬을 꿰고 있는 아녀자들을 뒤로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 보았다.

얼기설기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움막이 학교인지 작은 칠판에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칠판에 써 놓고 숫자를 또박또박 읽어가며 공부하고 있는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을 만났다.

눈빛만 푸르게 빛나는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험한 입성과는 상반된 깨끗한 영혼처럼 맑아 보였다. 그 교육의 현장이 바로 마사이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리라.

마사이족은 어디를 가나 눈에 뜨였다. 화려한 장신구에 박달나무 지팡이를 언제나 짚고 다니는데다 키가 유독이 크고 의상도 칼라플한 탓이다.

마사이족은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여자의 집에 신부대금으로 소를 5~10마리를 주나 신부가 예쁘면 예쁠수록  더 많은 소를 주고 데려 온다. 일부다처제인 마사이족은 부인의 숫자가 능력에 비례해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선 딸 시집보내는 것이  재산 증식의 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뉴욕의 패션계에서 세계적인 모델로 활약하는 와리스 디리의  실화를 쓴'사막의 꽃'이라는 책을 보면 와리스 디리가 60먹은 남자에게  낙타 다섯 마리와 바꿔져 시집가기 직전에 도망쳐 나온 스토리가 나온다. 
 

일부다처제와 할례를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는 마사이족을 실제로 둘러보고 난 이후의 소감은 한마디로 너무나 애잔했다.  많은 아녀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업고 있었는데 정말 음핵을 제거한 수술'할레'를 했을까하는 의구심에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아무리 피부가 검어도 밝게 웃는 모습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어느 마자이족 모자의 미소가 아름다워 여러 컷의 사진을 찍고  제일 늦게 차에 올라 한동안 친구한테 지청구를 들어야했다.

단체 행동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노라고. 일행들은 일찍 와서 기다리는데 나 혼자만 사진 더 찍겠다고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 되어 하필이면 그 시간 교행 안 되는 다리에서 커다란 트럭이 고장이 나 오랫동안 기다려 건너다보니 심바 캠프장 도착 시간이 더욱 더 늦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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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족에 대한 팁

전설에 의하면 마사이족은 그들의 신인 응가이 신과 하늘나라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지상을 내려다본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가 살고 싶었다.  신에게 허락을 받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함께 내려가는 소와 염소,  양을 기르고 그 젖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만 사슴을 잡아먹어 버렸다.  화가 난 신은 그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타고 내려간  밧줄을 끊어버렸다. 신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는 함께 내려간 가축들의 수가 신이 만족할 만큼  그 숫자가 불어났을 때 밧줄을 다시 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사이족은 신이 부르실 그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른 부족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들도 그들이 마사이족의 재산을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언제든 필요할 때면 도로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마사이족의 용맹스러움은 그들이 가축을 지키기 위해 사자에 맞서고 다른 부족과의 분쟁 과정에서 길러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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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에 대한 팁

뉴욕의 패션계에서 세계적인 모델로 활약하는 와리스 디리는 1965년,  소말리아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 가족의 생존한 열두 아이 중 하나로 태어났다.  ‘사막의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녀 역시 이 지역의 ‘관습’에 따라 다섯 살 적 어느 밤중,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마을의 주술사 노파 집에 도착해 녹슨 칼끝에 여린 몸을 내어놓아야 했다.


살점을 도려낸 상처는 몇 달 넘게 핏자국과 고름이 범벅된 채 찢어지게 아팠고, 어린 소녀는 밤에도 신음 소리를 내며 한 달 넘도록 자리에 누워 지냈다. 친언니 하나와 사촌언니 둘은 이 비위생적인 음핵 제거 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아프리카 북부에서 널리 행해지는 이 해괴망측한 ‘전통’에 대해,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는 명시된 바가 없다고 한다. 그건 종교 전통이 아니라, 여성의 쾌락을 용납할 수 없는 근엄한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라는 말이다.

순결한 처녀로 자라기 위해 먼저 할머니들이 칼질을 하고, 정숙한 아내로 살기 위해 다시 남편의 칼이 그곳을 갈라낸다는 엽기적 상상력! 이는 숨통을 조이는 가부장 사회에서 분노와 일탈을 꿈꾸는 대신 굴종과 순응의 생존법을 터득하고 알아서 기는 앞잡이 여성, ‘가부장제 지킴이’ 노릇을 하는 음산하고 비굴한 늙은 여성들에 의해 더욱 야비하고 끈끈하게 보존되었을 게다. 

그래서 이집트와 케냐의 경우, 이 끔찍한 관습을 금하는 법률까지 공표되었지만  수백 년 넘은 악습은 좀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열네 살이 된 와리스 디리는 낙타 다섯 마리와 바꿔져 육십 먹은 영감의 신부로 팔려가기 직전, 여러 날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을 가로질러 수도인 모가디슈 언니 집으로 도망쳤다 아버지 손길로부터 좀 더 안전한 런던, 영국대사였던 친척 집에서 4년 동안 식모살이를 하며 홀로 글을 익힌다. 

친척이 귀국한 뒤에도 그녀는 런던에 남아 맥도널드에서 청소부로 일하다 한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패션잡지 표지모델이 되고, 파리와 밀라노의 패션쇼 출연에 이어 레블론과 로레알의 화장품 모델로도 얼굴이 알려지게 됐다. 

망설임 끝에 그녀는 1997년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고백하고, 음핵 절제로 고통을 겪지만 제 소리를 낼 수 없는 수백만의 자매들을 대표하는 유엔 명예대사로 임명돼, 전 세계를 돌며 아프리카 여성의 인권을 호소하고 있다. 

“아직도 아프리카에선 매년 200만 명의 소녀가 야만적인 할례 의식 때문에 죽어갑니다. 저도 한 여성으로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학대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여성을 도웁시다.” 

어느덧 세계적인 슈퍼모델의 열반에 오른 와리스 디리는 ‘사막의 꽃’이 겪은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에 대해 역시 유목민다운 결론을 내린다. 
 

“난 어디서도 내 삶을 즐거운 것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고, 언제라도 거길 떠날 수 있다. 
삶은 움직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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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사진=송선순 

http://www.parangse.kr/

 






첫날,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해서 새해를 맞다.



글쓴이 송선순      http://www.parangse.kr/

아프리카 첫날-나이로비 도착

2009년을 현지시간 2분 남겨 놓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곳 나이로비는 한국보다 6시간이 느리기 때문에
한국은 이미 6시간 전에 2010년 새해를 맞았을 거다.

새해 전야 축포를 빵빵거리는 자동차의 클락션으로 대신하는지
우리 숙소에서 보이는 나이로비의 길은 온통 자동차가 길을 메웠고
아프리카 원시부족들의 알아먹기 힘든 괴성처럼 들리는 목소리와 클락션
소리가 합해져 내 귀에서 소화 해 낼 수 있는 소음의 양을 넘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친구는 비행기 안에서 준 귀마개와 수면안대를 끼고 잠이 들었으나
나는 잠을 포기하고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와 심야의 새해를 알리는
축포행사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마지막 날에는 잠을 안자고
축제를 하고 새해 첫날을  술깨는 날로 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우리 일행이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 오후 2시 무렵. 23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머문 후다.

30일 인천공항 20시 50분에
QR532 비행기를 타고 일본 오사카 경유, 카타르 도하공항에 14시간 만에 도착했다.
도하에 2시간 머물다 다시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또 6시간을 달렸다. 기내식만 네 번 제공되어 우리는 기내식으로 사육당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아이팟에 담아온 클래식 수십 곡과 영화 '아웃어브아프리카' '코코샤넬'등
몇몇 편의 영화와 기를 쓰고 무겁게 지고 온 책 일곱 권이 장거리 비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어떤 공항이든 내리자마자 눈을 감고 공기를 맛보는 습관이 있는데
나이로비의 첫 느낌은 한국의 가을처럼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쨍쨍.
바람은 산들거려 맑고 기분 좋게 하는 공기였다.
여기저기 핀 핑크빛 부켄빌리아가 더욱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나이로비 자체가 고도 2천을 넘으니 우리나라 한라산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고지대임을 상기하면 서늘한 기운은 당연하다.

나이로비 공항 이름은 조모 케냐타로 케냐의 초대대통령 이름을 딴것이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줄리어스 니예레레 국제공항도
탄자니아의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아프리카에도 이처럼 독립운동을 한 국가적 영웅의 이름을 딴
공항이나 거리의 이름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미국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이나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처럼.

과거 영국의 식민지 탓인지 우측통행을 하는 나이로비는
마사이어로는 '차가운 물'이라는 뜻으로 아프리카의 관문이다.

이집트 카이로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다음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국제선 비행기들이 드나드는 아프리카의 심장구실을 하고 있다.
일단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나이로비를 거치지만
위험하기로 그지없어 여행객의 복대는 절반 이상은 그들 몫이라고 해야 할
만큼 주의를 요하는 곳이라는 글을 여러 번 읽었다.

16인승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숙소를 이동하는 동안 본
시내의 거리는 초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고 타잔이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락거린 곳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우리들의 숙소는 나이로비 케냐타 공항으로 부터 1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었으나 언덕에 올라 나이로비 근처의 시내 정경을 돌아보고 오는데
거리마다 세레나 윌리엄스 사진을 붙여 놓고 잠보 라디오 홍보를 하고 있었다.
.

나이로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27층으로
우리나라 63빌딩가서  돈 주고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
시내를 구경하듯 이 나라도 27층 건물에서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거리는 활기가 넘쳐  내전과 빈곤과 에이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전 지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드뎌 복잡한 명동거리를 닮은 곳을 빠져나와 숙소인 아크랜드 프라자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항시 고장이어서 8층까지 올라오는데
테니스로 단련된 허벅지가 아니었다면 쓰러질 뻔, 뻔했다

다행히 짐을 날라다 주는 포터가 있어 큰 가방은 옮겨줬지만
이고 진 배낭과 노트북과 큰 카메라의 중량은 나와 친구를 완전그로키 되게 만들었다.

습관처럼 화장실을 먼저 들여다 보니 인도의 아우랑가바드 만큼은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그곳은 마치 유태인의 수용소에서
나오는 화장실 같아서 지금도 어디를 가나 아우랑가바드의 욕실을 항상 비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오후 5시 이번 아프리칸 7개국 여행팀에 참가한 32명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자기가 경험한 세상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들뜬
여행팀원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였고
서울 부산 광주 목포 인천 일산 등 전국에서 모였음을 알았다.

여자들은 62세부터 21세까지 다양해 평균 나이 50정도로
학교 선생이거나 명예 퇴임한 분들이 주를 이루었다.

남성들 역시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최고령 71세 후암동에서 오신 남성분은
세계의 명산을 다 다니는 분으로  체감나이 5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우리 일행들을 인솔 할 총무를 선정.
경희의대 다니는 김양재. 이분은 총 30일 여행 기간 중 12일만 동행하고 먼저 귀국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경희의대에서 제주도로 떠나는 테니스 전지훈련 때문이라고 하니
테니스 마니아를 아프리카에서 알게 되어 무진장 기쁜 마음이 앞섰다.

아루샤를 거쳐 세링게티의 사파리를 떠나는 다음날의 일정에 관한 설명을 듣고
총 450불이라는 사파리 비용을 내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한국시간 밤 열두시니 당연히 또 졸릴만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너무 오래 비행한 탓인지 어지러워서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숙소에 올라와  나는 그대로 뻗어 잠이 들었고
친구는 나를 위해 밥을 짓고 일행들과 함께 슈퍼에 다녀왔는지
오렌지와 잘 익은 망고 두개가 책상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먹은 망고만큼이나 달고 과즙이 풍부하다면
정말 이번 아프리카 여행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밤 아홉시 무렵
맥주 마실 분들은 프런트에 모이라는 말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케냐의 유명한 맥주 Tusker를 맛보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맥주보다는 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케냐 나이로비의 가장 큰 볼거리
영화<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의 원작자가
살았던 곳을 박물관으로 만든 카렌 블릭센 박물관을 찾아보는 일이다.

덴마크 출신인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1885~1962)은 케냐에서
커피농장을 경영하다 실패한 뒤 귀국하여 자전적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아프리카를 떠나며)>를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했다.이 소설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1985년 미국의 시드니 폴락이 감독하고,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으로 출연해
흥행에 커다란 성공을 거둔  이 영화 때문에 나이로비의 명물이 되었다.

나이로비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팟에 담아와 보고 또 보았던 감미로운
러브스토리 아웃어브아프리카의 데니스와 카렌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 못했지만
결국은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이 아름다운 영화와 소설을 탄생 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플라밍고 떼가 춤추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배경으로 깔리던
그 아름답던 초원은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더욱 들뜨게 했고
결국은 30여일 여행기간 내내 사랑이라는 주제로 내 가슴을 잔잔하게 녹여낼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바쁜 일정으로 카렌블릭센 박물관을 보지 않고
바로 아루샤로 출발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섭섭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때 묻지 않은 대자연과
부족 문명을 체험할 수 있는 30일의  아프리카 배낭여행에 대한 기대로 부푼 첫 밤.

그나저나
새해 첫 소망을 글로 적어야 한다.




  • profile
    全炫仲 03.18 17:46
    아프리카를 여행한다는것은 좀 특별한 일인것 같습니다.

    생각은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여행....사진속의 나무들도 왠지 모르게 더 푸르고 상쾌하게 느껴지는군요^^



처음읽는 아프리카역사

굶주림·내전·에이즈·학살에 신음하고 있는 아프리카는 정말 버림받은 땅일까?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가장 인상적이고,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길 수밖에 없는 곳이 아프리카다. 블루스와 재즈의 뿌리가 아프리카 리듬이고 알앤드비·솔·록·힙합 역시 아프리카 리듬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인류의 요람이자 세계 음악의 자궁인 아프리카 대륙의 상처가 왜 이토록 깊고 고통스러운 것일까.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웅진 지식하우스)에는 그 답이 담겨 있다. 오랜 세월 서로를 인정하며 살아온 1만여개 부족을 50여개 국가로 만든 유럽의 무식함에서 비롯됐다. 비극의 장본인인 서양은 한 술 더 떠 ‘아프리카 사람들은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가’라는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프리카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형평성 있는 내용이다. 저자 루츠 판다이크는 독일인이지만 유럽적 편견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설득력 있는 글을 썼다. 아프리카의 기원에서 현재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책을 읽고 있으면 쉽게 읽히는 ‘재미’와 스쳐 지날 수 없는 ‘의미’를 동시에 섭취할 수 있다. 아프리카 화가가 직접 그린 풍성한 삽 화도 다정스럽다.

*
2005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는데 제목에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지도를 보며 '국경선에 참 직선이 많다'라는 의문을 얼핏 가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연하게도 미국의 지도와 매우 흡사하죠.  전반적인 대륙의 모양도 그렇고 대략적인 경계선의 숫자(국가와 주)도 비슷합니다. 50여개 남짓... 그래서 아프리카의 일부 지도자가 아프리카 합중국을 꿈꿨는지도 모릅니다

아반투(Abantu) 인간의 땅 아프리카!

"인간은 우리의 첫번째 조건이다. 인간이 우리의 척도를 결정한다....
아프리카의 여자와 남자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벌써 끝장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말하게 해보라. 무엇보다도 그들이 행동하게 해보라.
효모가 작용하는 것처럼, 그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갖고서 우주의 문명을 만드는 것에 동참하게 해보라" - 세네갈 초대 대통령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우리는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서방세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듣기 때문에 많은 부분  왜곡되었던 것 같습니다.  

검은대륙, 기아와 질병과 에이즈, 오랜 전쟁과 내란, 못 사는 나라, 미국에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  다이아몬드, 남아프리카, 넬슨 말델라, 다음 월드컵 개최대륙... 이집트가 아프리카인가?

단편적이고 부정적이며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합니다. 작가는 유럽과 열강의 시각으로 말하려 하지 말고 들으라고 주문합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시각도 그렇다고 아프리카 원시 삶이 마치 인간 본연의 모습인 것처럼 찬양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고 인간이기를 소망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인내를 가지고 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주 깊이 인간적인 것으로 서술되어야 할 아프리카의 역사

작가의 관점에 대한 아프리카 지식인의 평가는 작가 암마 다르코의 에필로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주 깊이 인간적인 시작에서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해해야 단절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의 미래를 정당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내 소원은 아프리카의 역사가 이 책처럼 우리의 어려움과 기대가 현실적으로 서술되고 우리의 강점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관한 많은 책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는 많은 고통과 슬픔을 지녔다. 그런데도 우리가 언제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 삶의 기쁨으로 가득 넘쳐서 서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내적인 강인함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아프리카 사람들의 진기한 특성으로 서술되지 않고 아주 깊이 인간적인 어떤 것, 우리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 본문 중 작가 암마 다르코

저자-루츠 판 다이크(Luz van Dijk)
네델란드계 독일인으로 1955년 베를린에서 출생. 남아프리카의 흑백분리정책 반대활동으로 1990년까지 입국이 금지. 2001년 출간한 <유대인의 역사>는 독일 청소년 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음. 2001년부터 케이프타운에 정착해 에이즈 피해를 입은 어린이를 보살피는 호키사 재단의 공동설립자로 활동하고 있음(www.hokisa.co.za) - 저자 소개 中


*
아프리카의 다채로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휴머니즘이 살아 있는 역사 교양서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유럽인의 시각을 벗고 편견 없이 만나는 아프리카의 참모습
80년대 초반 〈부시맨〉이라는 영화가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신의 선물이라 여기며 기뻐하고 다투는 부시맨들의 모습과, 마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에 배꼽을 잡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문명의 이기를 비판하고자 만들어진 영화라지만, 정작 우리의 머릿속에는 순박하지만 미개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부시맨의 이미지로 굳어져 남아 있을 뿐이고, 지금까지도 촌스럽거나 못생긴 사람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부시맨의 생활은 어떨까. 최근 보츠와나 정부는 칼라하리 사막에서 2만년 이상 거주해온 부시맨을 강제이주시키려 하고 있다. 공식적인 이유는 부시맨이 키우는 염소에게서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옴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부시맨 거주지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었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보츠와나 정부는 개발정책과 동물보호정책 등을 이유로 들어 부시맨의 거주지를 축소시켜왔고, 이에 반발해 부시맨들이 소송을 제기해 영구거주를 법으로 보장받기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권력의 이해에 따라 한 집단의 운명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실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것, 이는 비단 부시맨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부시맨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채로운 아프리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서구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에게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대륙이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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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짧은 시간 만에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랍 상인들로구성된 마피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며 완전히 새로운 노예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제 노예는 지위가 낮은, 또는 권리가 줄어들거나 없는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얻기 위해 붙잡아서 수송하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되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독점 사업이 다른 유럽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고, 이제 서부 아프리카 앞바다에서는 해적선들 말고도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한도안은 스웨덴, 덴마크, 독일 국적의 함대들이 서로 이 사업을 두고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 본문 116~117쪽에서 -

알라딘P.158 : 식민 지배자와 거짓 선교사를 쫓아내는 것이 곧 자유롭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정말 힘든 교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아프리카의 다양성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닫는 것, 독립과 자유를 통합하는 것이 여자와 남자에게 아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아직도 과제로 남아있다. -

아마 아타 아이두 - chikaP.158-159 : 우리는 서로를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먹을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구호단체들이 너무 조금 너무 늦게 내놓는 것을 양철 그릇에 받으려고 '끝도 없이 길게 줄서서 지나가는 바'싹 야윈 인간들의 모습을 매일 본다. 우리는 언제나 배우게 될까. 이 지구상의인간들은 언제쯤이나 일어나 외치게 될까, 이제 충분하다고.
...... 인간이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배우게 될까, 그리고 인간을 그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며, 이런 모독이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언제나 배우게 될까?

다른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스스로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억압은 억압받는 사람보다 더 많지는 않더라도 그와 똑같이, 억압하는 사람의 인간성도 없애고 만다. 양쪽이 다 정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 남아프리카 성공회 데스먼드 음필로 토토 주교. - ch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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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소설을 읽다가 ‘루뭄바’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군인들이 루뭄바의 머리채를 붙잡고 강제로 무릎을 꿇리고 있는 그 유명한 사진이 그곳에 있다는 걸 그제야 비로소 알아보았다….” 이야기 전개에서 중요한 사실도 아니고 그저 화자의 심리를 묘사하는 짧은 문단이었다. 역자는 루뭄바가 ‘아프리카 민족주의 지도자, 콩고 민주공화국의 초대 수상’이라는 간단한 각주를 달아놓았다.
파트리스 루뭄바. 1950년대 아프리카 콩고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민족해방·통합 운동에 뛰어든 젊은이 루뭄바는 1960년 해방된 콩고의 초대 총리가 되어 식민지배자였던 벨기에 국왕이 참석한 독립 기념식에서 일갈한다. “우리는 흑인들이 자유로워지면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지 온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불안한 정정 속에서 그의 비서 출신으로 군 지휘권을 쥐고 있던 조제프 모부투가 미국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가택 연금됐다 탈출했으나 다시 붙잡힌 루뭄바는 군인들에게 머리를 쥐어뜯기는 등 굴욕적인 폭행을 당했다. 이 장면이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알려진 ‘그 유명한 사진’이다. 그 뒤 루뭄바는 또 다른 정적의 손에 넘겨져 처형됐고 이후 주검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사진, 아니 그의 이름조차 내겐 왜 생소할까. 물론 40년도 더 지난 일이어서도 그렇겠지만, 로맹 가리가 프랑스 작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한 경험이 있던 유럽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차이에도 원인이 있을 것 같다. 하기야 우리가 아프리카의 역사에 바친 호기심이란 게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 즉 백인의 역사를 무대 중앙에 올려놓은 우리의 교육과정과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흑인의 역사에서는 노예사냥과 식민지배, 독재와 쿠데타, 인종청소 따위의 음울한 이미지컷 몇 장밖에 건질 게 없다. 노예로 팔려가던 조상들이 고개 숙이고 지나던 해안가 요새의 굴다리 밑에서 구멍난 메리야스 차림으로 하릴없이 뒹굴며 낯선 외국인들에게 불만의 눈길을 보내고 있던, 서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빈민들이 주던 느낌 말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은 이 행성 최초의 인간이며, 역경을 딛고 모든 대륙으로 뻗어가 현생 인류의 씨를 뿌린 종족이다. 기원전 800~500년 콩고 분지에서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간 종족의 이름 ‘반투’(Bantu)는 ‘인간’을 뜻한다고 한다. “얼마나 매혹적인 생각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맨 먼저 자기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그들의 역사는 기록되고 전달되지 않았을 뿐, 다른 인종의 역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식민지배와 전쟁, 개발의 근현대사에서 그들에게도 김구와 이승만이 있었고 박정희와 김영삼·김대중이 있었으리라.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에라리온에서 만난, 역사의 상처와 현재의 빈곤을 어떻게든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앞당겨오리란 열정에 불타던 흑인 시민운동가들의 피부는 열대의 태양처럼 빛났다. 인류의 전진은 피부색과 무관하게 지구 어디에서나 한 걸음씩 이뤄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인류는 살아간다.

버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도 그런 발걸음의 하나다. 그래서 미국 대선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가 단지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어선 안 된다.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커다란 파열구를 냈다는 점은 물론 뜻깊지만, 그런 소수집단 출신으로서 인류 전체의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치와 열정과 힘이 그에게 체화돼 있을 것이란 기대가 더 큰 열광의 이유일 것이다. 평화롭고 공평하고 아름다운 미국, 나아가 그런 지구촌의 미래가 그에게 진실로 절실한 꿈인지가 앞으로 오바마 미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 그리고 세계인의 지지 기준이다. 물론 그건 좀더 두고 봐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좌파 언론인’인 매튜 라이스의 ‘삐딱한’ 할렘 르포를 표지이야기로 삼은 것은 그런 이유다. 오바마를 보는 다양한 시선 가운데 어느 것이 흑인의 역사와 인류의 전진에 관한 진실에 가까운지, 우리는 앞으로 4년 동안 담대함과 희망을 품고 지켜볼 일이다./한겨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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