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봉주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친구에게 봉주르. 경기장 걸어가는 길에 눈 마주치는 사람마다 봉주르. 경기장 첫 보안요원에게도, 몸 수색 요원에게도, 미디어 어크레디테이션 큐알코드 스캐너에게도 봉주루, 아마도 20번 이상은 봉주르하고 기자실 자리에 앉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연일 비오는데 경기 어떻게 하냐, 귀국은 제때할 수 있냐, 귀국해 취재와서 해 줄수 있냐고 하는 연락이 오지만 일단 프랑스오픈이 열리는 파리 롤랑가로스는 봉주르입니다.


봉주르. 영어로는 굿모닝, 우리말로는 좋은 아침 혹은 좋은 하루.

프랑스에 살면서 꼭 필요한 단어는 10개도 안됩니다. 봉주르, 봉솨르, 메르시, 파르동, 콤비엥, 마담, 마드모아젤, 무슈 정도.


그정도에서 조금 더 아는 기자로서는 프랑스 생활에 별 불편이 없고 피곤치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어보면 설명을 잘 하는 친절한 사람들이 곁에 늘 있고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그저 저를 새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파르동 마드모아젤(죄송합니다. 아가씨)하고 말을 걸고 지도를 펴거나 하고자하는 단어를 던집니다.그러면 원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파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편합니다.


새롭게 해주는 것은 기자생활 좀 오래하고 대회 취재 많이 한다고 했는데 이번처럼 감동을 받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중이 동시에 야유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선수가 관중들에게 어떤 존재이고 그들에게 무엇을 줘야하는 지를 알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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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해주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 정윤성입니다. 코치없이 프랑스오픈에 출전한 정윤성의 경기를 세번 봤습니다. 한번은 단식, 두번은 복식입니다. 단식 1회전은 실력도 우위에 있지만 상대를 약간 풀어주다 당했습니다. 그날은 정윤성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복식 1회전도 실력 출중한 선수들이 우쭐대다 큰 코 다칠뻔했습니다. 막판 집중해 이겼지 아니었으면 단식 1회전 패배를 재탕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3일 열린 복식 2회전은 그야말로 '테니스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하는 것을 알게 해주고 정윤성을 새롭게 느끼게 해줬습니다.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멘탈이야기입니다.


코트 입장이 그 어느 선수보다 빨랐고 체어 엄파이어의 매치업 콜에 부지런히 나와 서서 그의 말에 귀를 쫑긋했습니다. 복식하는 1시간 남짓내외동안 눈을 못떼게 만들었습니다. 실수하는 파트너를 다독이고, 파트너가 서있는 구석까지 가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잘하자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발리로 어렵게 공을 넘겨 득점하고 특기인 포핸드는 번번이 위너로 변신해 경기장 흐름을 바꿨습니다.


흩뿌리는 비에 10도의 유럽 스산한 저녁 날씨인데 일부 관중들은 주니어 복식 경기에 몰입했습니다.

기자는 동영상으로 담고 싶어 스마트폰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찍었습니다. 사진도 연신 눌러댔습니다. 선수들에게 기자가 원하는 것은, 팬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최선하나 뿐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고 경기장 밖 대부분 사람들은 선수들의 최선을 원하고 감동을 원합니다.


비가 연일 내리고 코트 방수막은 하루에도 여러차례 덮고 걷고 하는 숱한 어려움속에서도 프랑스오픈은 궂궂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센강이 범람하고 파리 일부가 침수되었다하더라도 롤랑가로스는 봉주르입니다. 비오는 데 경기는 열리고 양복입은 신사는 비맞으며 선수들을 봅니다. 눈 가득 선수들의 최선을 담습니다.


기사보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독자들이 생겼습니다. 고생한다며 케이크 전자 쿠폰을 보내주고 영양 보충하라며 성의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저는 왜 롤랑가로스에 왔고 왜 있는지 되돌아 봅니다.


전문적인 기사,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기사와 사진, 독자들을 대신해 독자의 눈으로 취재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그런지 피곤하지도 힘들지도 보링하지도 않습니다. 5월 20일 서울 김포공항을 떠나 베이징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 지 어느새 14일이 되었습니다. 2주가 지났는데 지루함보다 아쉬움, 돌아갈 차분하게 풀어놀 보따리, 머릿 속 정리과 구상 등등으로 인해 시간이 짧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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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리아


기자가 정윤성 경기하기 전에 감동받은 일이 하나 더 있어 소개합니다.


세레나 윌리엄스와 유리아 푸틴세바 여자단식 8강전 경기입니다. 푸틴세바는 163cm, 세레나는 그야말로 큰 체구. 첫세트를 푸틴세바가 이기는 과정에서 필립 샤트리에 코트 관중들 대다수가 푸틴세바 편이었습니다. 세레나는 코칭 스태프를 제외하고 간간이 '세레나'를 외치는 일부 관중외에 없었습니다.


2세트에서도 세레나가 좀처럼 경기를 일방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푸틴세바의 문볼과 빨래줄 샷에 번번이 당하면서 이긴다고 보장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여자 1번 시드의 탈락, 지난해 우승자의 탈락이 그려졌습니다. 모스크바태생의 카자흐스탄 국적 당찬 21살 여자 선수는 세레나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듯 세레나를 코트에서 춤을 추게 만들었습니다. 세레나가 볼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게 만든 반면 자신은 세레나를 볼머신처럼 활용했습니다. 세레나의 백핸드 가로 스윙 볼을 기다린 듯 받아쳐 세레나의 발이 못 쫓아가게 광속 스윙을 했습니다.


세레나의 강서브에 대해선 문볼 리턴으로 베이스라인부근에서 크게 튀어 오르게 했습니다. 높게 튀어 오르는 볼을 눌러 치다 세레나는 네트에 볼을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득점은 당연히 푸틴세바의 몫.


세레나가 베이스라인 뒤에 나가 있으면 푸틴세바의 드롭샷이 나오고 세레나의 질주가 이어집니다.

카메라 셔터는 연신 터졌고 배터리가 아웃되고 메모리 카드가 꽉찰 정도였습니다. 관중들은 이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세레나의 승리로 끝나자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냈습니다. 퇴장하는 푸틴세바에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롤랑가로스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코트에 새겨지면서 역사가 흘렀습니다. 우리도 감동 주는 선수와 대회가 될 때 팬들이 경기장을 찾고 테니스 선수의 플레이에 열광을 합니다. 롤랑가로스처럼. 봉주르로 시작했는데 한국테니스의 봉주르를 기대합니다.


기사=파리 박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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